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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임목사이야기

뿌리는 재기의 희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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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wokang 작성일12-07-23 09:20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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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는 재기의 희망이다.

 1.

얼마전 우리 부부는 목사관을 단장하기 위하여 나무를 두 그루 사서 앞뜰에 심었다. 심을땐 별 생각 없이 심었는데 심고보니 나무 두 그루를 너무 가까이 심고 말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 두 그루의 나무는 서로 “기 (氣)”싸움을 하는 것 처럼 보였고, 결국 덩치가 작은 나무는 점점 마르더니 죽은 것처럼 보였다. 나는 어느날 문득 그 죽은
나무를 발견하고 안타깝고 미안한 마음으로 다가가서 자세히 살펴 보았다. 그런데 그 나무는 죽은 것이 아니라 꼭 필요한 부위만을 남겨논체 생명을 간직하고 있었다. 마치 재기를 노리며 몸을 웅크리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이 나무를 보면서 그간 옆에 있는 나무와 기싸움을 하면서 얼마나 힘들었을까 생각하며 참으로 안타까웠다. 그리고 눈물이 났다. 그 나무는 어려운 전투중에도 언젠가는 다시 한번 재기할 수 있도록 그 뿌리만은 온전히 보전하려고 안깐힘을 썼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은 겉으로 들어나는 온갖 아름다운 꽃과 열매는 잃었지만, 그 뿌리가 있음으로 언젠가 때가 되면 재기할 수 있을 것이다.

2.

오늘날은 재기를 위한 뿌리를 잃어버린 시대이다. 우리는 ‘열린사회’ ‘연결된 사회’에서 수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지만, 그들중 유행의 패러다임을 넘어서는 안정적이고 흠이 없는 인격과 철학과 소신을 만나기가 쉽지 않은 세상이다. 철학과 소신은 개인과 사회가 그 어떤 어려운 중에 있다할지라도, 재기할 수 있도록 이끄는 삶의 뿌리이다. 이를 통감했던 허친스(Robert Maynard Hutchins) 박사는(1899 ?1977) 예일대학교에서 시카고대학으로 옮겨 총장이 된 이후 모든 학생들에게 전공에 상관없이 고전 백 권씩을 읽게 했다. 고전들을 읽으면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영원불변하는 진리를 발견하고, 본받을 만한 위대한 인물들을 책 속에서 만나라는 주문이였다. 그 결과는 참 놀라운 것이였다. 학생들은 가벼운 세상의 페러다임에서 벗어난 참 자유인으로서, 학문과 인생을 좀 더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었고, 세상을 영원불변하는 진리에 기초하여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얻게 되었던 것이다.

3.

한 인간이 참 자유인으로 산다는 것은 뿌리와 같은 진리를 확신할때 가능한 것이다. 이 뿌리를 알 때, 우리는 세상의 요동치는 유행과 가치관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 또한 우리가 아무리 낮고 어려운 처지에 있다 할지라도, 뿌리를 알고 있으면 우리에게는 희망이 있다. 왜냐하면 그 뿌리는 언젠가는 싹을 트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21세기
초연결(Hyper-connection)의 시대에 가장 우려가 되는 것은 뿌리가 확실치 않은 수상한 바람이다. 근거와 논리가 빈약한 주장조차도 한 번 바람을 타기 시작하면, 금방 많은 사람들에게 호응을 얻고, 그 결과 사람들은 그것이 옳은 것인지, 옳지 않은 것인지 생각할 시간도 없이 그 바람을 함께 탄다. 그래서 우리는 앞으로 나아가기 전에, 현재 내가 호흡하고 있는 바람이 과연 어떤 바람이지를 평가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삶의 철학과 기준이 필요한 것이다.

당신은 어떤 철학과 기준으로 삶을 살아가는가? 당신의 철학과 기준은 뿌리와 같은 깊이를 가지고 있는가? 오늘날 한국과 한인이민 사회를 바라볼때 심히 우려가 되는 것은 우리 민족의 종교적 역량이 현저히 저하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특히 요즘의 젊은이들은 한국민 특유의 종교심을 상실한, 전통적 한국인 상을 벗어난 세대로 묘사가 되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종교는 부 (wealth) 와 효율성 (efficiency)이 중시되는 세상에서 터무니 없이 주장되는 비이성, 비효율이 아니라 초이성, 초자아의 영역이라는 것이다. 종교는 나의 한계가 확장되도록 돕는다. 그래서 우리가 가장 신뢰할만한 오래된 뿌리와 같은 것이다. 이 뿌리는 끊임없이 이어지는 삶의 실패에서도, 단 한 번도 예외없이 우리를 다시 일으켜 세우고, 그 실패조차도 우리들 영혼의 근육질이 되게 하는 신의 선물인 것이다. 이 뿌리는 우리를 회복케 해서 다시 일어서게 하는 기름진 밥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