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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포 소리를 뚫는 방법

글쓴이 : wokang 날짜 : 2012-07-23 (월) 09:17 조회 : 1014
폭포 소리를 뚫는 방법

 

한국의 전통적인 소리꾼들은 소리 연습을 할때 폭포 앞에서 연습을 한다. 인간이 아무리 노력을 한들, 한 인간이 뿜어내는 소리가 그 거대한 폭포의 소리보다 절대로 클 수 없다.  하지만, 소리의 경지에 이른다는 ‘득음’을 할때, 드디어 소리꾼의 소리는 폭포소리 속에서 자신의 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폭포 소리보다 더 큰 소리를 내는 것이 아니라, 그 폭포가 내는 소리의 파장과는 다른 파장의 소리를 냄으로서, 그 폭포의 소리를 뚫고 나오는 것이다.

목회를 하다보면, 많은 기독인들이 교회의 예산과 교회 건축비용의 크기를 자랑하듯이 말하는 것을 듣곤한다.  하지만 그 교회의 예산과 건축비용이 아무리 많아도 1억 달러도 되지 않는 금액이다. 1억 달러는 10억 달러보다 훨씬 적은 금액이고, 10억 달러는 100억 달러보다는 훨씬 적은 금액이다.  그래서 기독인과 교회가 자랑해야 할 것은 이와 같은 상대적인 물질이 아니다.  기독인이 자랑해야 할 것은 오히려 그 물질의 아성을 뛰어넘는 절제된 단순하고 겸손한 삶이다. 바로 이것이 세상은 가지고 있지 않지만, 기독인은 가지고 있어야 할 구별된 파장인 것이다. 

강대국의 흥망성쇠를 설명하는 국제정치이론 중에 ‘Long Cycle Theory’(장기순환이론)라는 것이 있다. 지난 500년 동안 장기적으로 세계를 재패했던 국가들을 살펴보면 공통된 특징이 들어난다는 것이다. 포르투갈(16세기), 네덜란드(17세기), 그리고 영국(18~19세기)은 모두 바다를 끼고 있는 연안국가들이다. 그리고 크지는 않지만 정치적으로 잘 조직이 되어 있었고, 무엇보다도 나라의 크기에 비해서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해군력이 잘 갖추어진 나라들이였다.

하지만 이런것들만 가지고는 그 나라의 성장원인을 ‘모두’ 설명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비슷한 환경을 가지고 있지만, 크게 성장하지 못했던 국가들도 많기 때문이다. 그럼 비슷한 환경을 가지고 있지만 왜 어떤 나라는 성장하고, 어떤 나라는 성장하지 못하는 것일까? 많은 학자들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한 나라의 성장은 눈에 보이는
요소 못지 않게,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그 나라의 국민들과 전통에 스며들어 있는 ‘근성’ 내지는 ‘국민성’ 혹은 국민의 ‘사기’가 결정적으로 중요하다는 것이다.

1579년 한여름에 새로운 무역로를 찾기 위해 북극해로 들어갔던, 네덜란드의 한 상선은 큰 빙하들 사이에 갇히고 말았다. 선원들이 죽어가는 극심한 상황에서 약 50여일을 버티면서, 그들은 러시아 상선에 의해 극적으로 구출 되었다. 살아남은 선원들이 네덜란드로 돌아갔을때 많은 사람들은 그들의 인내력을 크게 칭찬했다.  하지만 그 칭찬을 훨씬 뛰어 넘는 큰 감동이 있었는데, 그것은 그들이 끝까지 상인으로서의 양심을 지켰다는 것이다.

그들은 다른 상인들이 그들에게 대신 팔아달라고 부탁한 옷과 식량, 약품 등을 전혀 손대지 않고 고스란히 다시 가지고 왔던 것이다. 선원들은 영하 40도의 혹독한 추위에 떨고, 극심한 굶주림과 괴혈병에 시달리면서도 고객의 물건을 끝까지 꿋꿋하게 지켰던 것이다. 이처럼 생명 못지않게 상도를 중요시하며, 자신들의 상인으로서의 도리를 끝까지 지켰던 네덜란드 상인들의 모습은 전 세계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주었다. 그래서 그 이후 네덜란드 상인은 신용을 목숨처럼 여긴다는 소문이 돌았고, 그 소문을 등에 업고서 네덜란드는 유럽 해상 무역을 독점하다시피 하며, 그때부터 100여년간 세계에서 제일가는 번영의 꽃을 피웠던 것이다.

지금 기독교는 네덜란드 상인과 같은 특유의 근성으로 인해, 이 세상과는 다른 파장을 내고 있는가? 기독교는 영적 진리를 전파해야 할 특유의 종교적 사명 이외에도, 이 세상과는 다른 도덕적 파장을 냄으로, 하향식 회전을 거듭하고 있는 세상의 도덕을 끌어올려야 할 시대적 사명이 있다. 이 사명은 거룩한 근성을 가지고, 현재 서 있는 곳에서 작은 일에 극히 충성할때, 자연스럽게 뿜어져 나오는 세상과는 다른 파장으로만 성취 가능한 것이다. 교회는 이제 큰 것을 자랑하기에 앞서, 작은 것에 충성됨을 자랑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