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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1%

글쓴이 : wokang 날짜 : 2012-07-23 (월) 09:46 조회 : 1132


삶의 1%

 

발명왕 에디슨은 다음과 같은 유명한 말을 남겼다. “천재는 1퍼센트의 영감과 99퍼센트의
노력으로 이루어진다.”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말을 해석할 때 1퍼센트의
“영감”이라는 말보다는, 99
퍼센트의 “노력”이라는 말에 무게를 둔다. 다시 말해, 열심히 노력하면 무엇이든지 성취할 수 있다,라고 해석하는 것이다. 하지만 에디슨은 그의 죽음을 불과 2년 앞둔 82세 생일 때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며, 다음과 같은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최초의 영감이 좋지 못하면, 아무리 노력해도 신통한 결과를 얻을 수가 없다. 인생을 살아보니, 1퍼센트의 영감이 99퍼센트의 노력을 좌우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인간의 유전자 구조는
98.77 퍼센트가 침팬지와 일치한다. 다시 말해, 거의 99 퍼센트의 유전자가 침팬지와 똑 같지만, 단 1퍼센트의 차이가 인간과 침팬지의 간격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이런
사실은 우리의 인생과 신앙에도 적용된다. 사람들이 먹고 사는 것에는 근본적으로 큰 차이가 없다. 그래서 겉으로 보이는 99 퍼센트의 삶은 거의 차이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사람들을 결정적으로 구분하게 하고, 인생의 성공과 실패를
가르며, 삶의 의미와 무의미를 결정하는, 1 퍼센트는 보이지
않는 내면에 숨어 있는 것이다.

 

신앙이든 인생이든 1 퍼센트가
문제다. 이 1 퍼센트가 없으면 99 퍼센트의 노력은 방향을 찾지 못한 헛된 노력이 될 수가 있기 때문이다. 초기
기독교의 기초를 닦았던 바울 사도는 기독교의 1%를 이렇게 표현했다.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 그러나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다시 말해, 기독교를 표현하는
1 퍼센트, 변하는 세상 가운데서도 변하지 않는 영원한
1 퍼센트는 ‘사랑’이라는 것이다.

 

사랑은 모든 종교 아니 모든 삶에 스며있다. 하지만 기독교의 사랑은 독특하다. 왜냐하면 기독교의 사랑은 은혜의
사랑을 기초로 하기 때문이다. 은혜의 사랑이란 사랑을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에게 주는 사랑이다. 세상은 사랑을 줄 때도 내가 주고 싶은 사람, 내가 좋아하는 사람,

나에게 잘 해주는 사람에게만 사랑을 준다. 그런데 하나님의 사랑은 그분을 조롱하고 십자가에 못을 박는 도저히 사랑을 받을 수 없는 사람에게 조차도 베푸는
사랑인 것이다. 바로 여기에 나와 당신의 고민이 있는 것이다.

 

예언이든 방언이든, 치유든
지식이든,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그림자다. 능력도 예언도
치유도 지식도 모두 하나님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그런데 그림자를 만들어내는 본체인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적 사랑을 가진 자 만이 변하지 않는 1 퍼센트를 가진 사람이다.

 

삶의 터전에서 두드러지게 느끼는 것 중에 하나는 우리 한인들의
쏠림 현상이다. 여론이 되었든, 유행이 되었든, 많은 삶의 모습 가운데서 자꾸 급격하게 치우치는 것이다. 왜 그럴까? 99퍼센트의 활동을 잡아주는 1퍼센트가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기독인은 은혜의 사랑이라는 1퍼센트를 지켜서 판단하고 행동해야 한다. 그리고 이 사회와 국가의 구성원은 그 사회와 국가의 1퍼센트 가치를
잘 이해해서 실천해야 한다. 이 사회가 1퍼센트로 애써 지키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가? 이것을 이해하고, 나의 이해를 뛰어
넘어 헌신할 때 그때 우리는 이 사회의 리더로 태어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