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게시물 13건, 최근 0 건

울림

글쓴이 : wokang 날짜 : 2012-07-23 (월) 09:42 조회 : 1075
울림

  1.

기독교 초기 시절 특히 활발한 활동을 했던 교부가 알렉산드리아 출신의 오리겐(185~254) 이다. 그는 능력과 열정이 뛰어나서 생애 동안 무려 2,000권에 달하는 저서를 남겼다. 이 위대한 지도자는 통찰력 넘치는 많은 금언을 남겼는데, 그 중에서도“신앙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은 오늘까지도 우리의 가슴을 울리는 한 마디이다. “신앙에서 안다는 것은 사랑하는 것이고, 사랑한다는 것은 연합하는 것이다.”

 

이 말을 거꾸로 뒤집어 보면, “연합하지 않고는 사랑할 수 없고, 사랑하지 않고서 안다고 말할 수 없다”라는
말이 된다. 다시 말해, 신앙을 하는 사람은 자연스럽게 신과 타인을 사랑하게 되고, 그 사랑이 발전해 가면서 그들과 연합하게 된다는 것이다. 내가 신앙을 한다는 것은 혹은 진리를 안다는 것은 입의 고백으로만 증명되는 것이 아니라, 그 고백이 일상에서 ‘사랑’과 ‘연합’이라는 실제적 열매를 맺을 때만 비로서 증명이 되는 것이다.

 

2.

우선 ‘사랑’은 무엇보다도 그 대상을 향한 강력한 수고를 필요로 한다. 기독교의 위대한 지도자였던 바울은 마게도니아의 데살로니가 지역에 있는 성도들에게 믿음을 설명하면서, ‘사랑의 수고’를 언급한 적이 있다. 그에 따르면 사랑은 강력한 노동(코포스, intensive labor)이라는 것이다. 

 

한인들의 미국 이민사를 살펴보면 하와이 ‘사진 신부’들이 등장한다. 1910~1924년 사이에 600여명의 한인 여성들이 남편 될 사람의 사진만 보고서 무작정 하와이로 왔기 때문에 ‘사진 신부’라고 불렸던 것이다. 이 신부들은 남편들과 함께 노동을 하면서 집안살림을 꾸리고, 자녀들도 열심히 키웠는데, 그때 그 사람들이 받는 급여는 남성이
한 달에 $16, 여성은 그 보다 더 적은 돈을 받았다고 한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 ‘사진 신부’들이 ‘대한부인회’라는 것을 만들고 조국의 독립운동을 지원하기 위해서 매달 1달러씩 기부했다는 것이다. 당시 자료에 따르면 그들의 생활 수준은 무척 비참한 것이었는데, 조국을 ‘사랑의 대상’으로 삼은 그들은 그 피나는 생활 가운데서도, 사랑의 대상을 향해서 자신들의 귀한 것을 바쳤던 것이다.

 

이처럼 사랑의 대상이 있을 때 인간은 자신을 기쁨으로 희생할 수 있게 된다. 신앙이란 이러한 사랑의 대상을 부여 받는 것이다. 물론 보이지 않는 신이 우선적 사랑의 대상이지만, 그 사랑은 내 주위의 사람들에게 펴져갈 때 완성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기쁨으로 희생하면서 사랑할 대상이 없는 사람은 아직 신앙이 없는 것이다.

 

3.

믿음을 증명하는 두 번째 조건인 ‘연합’은 사랑이 섭리를 통해 열매를 맺는 것이다. 선한 연합, 나를 희생하는 연합은 인간의 본성을 거스르는 것이기에, 신의 섭리를 인정하는 믿음을 필요로 한다. 모든 것이 나와 다른 사람조차도 신이 나에게 보낸 사람이라고 인정하는 것이 연합의 기본인 것이다. 섭리는 믿는 자의 특권이다. 신은 섭리로 역사해서 가벼운 우연조차도 사용하면서, 인간의 상상을 초월하는 일들을 이룬다. 그래서 믿는 자는 그 어떤 답답한 운명에 처해 있든지, 신의 섭리를 믿고 앞으로 나아가면서, 그 운명을 움직이고, 그 운명을 이기는 것이다.

 

왜 사랑이 식었다고 하는가? 왜 연합이 깨어졌다고 하는가? 사랑과 연합의 초석이 되는 앎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성직자조차도 신의 가르침을 이해하기 위해 투자하는 시간이 하루 평균 한 시간도 되지
않는 세상이 된 것이다. 신앙은 사랑과 연합이라는 울림이 없이는 들리지 않는 것이다.